발기부전치료제구입 “통진당은 모의만으로 해산” “재판소원은 4심제”···헌재 국감서 여야 난타전
작성일 25-10-21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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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또또링2 조회 4회 댓글 0건본문
이성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통합진보당은 내란 모의만 했는데도 해산됐다”며 “국민의힘 1호 당원이 윤석열(전 대통령)이고, 그 당은 불법계엄을 해제하려는 국회 의결을 방해하고 탄핵 소추를 위한 본회의에는 나타나지도 않았으며 윤석열 체포 현장에서는 인간 방패를 자처한 당이다. 이 정도면 해산 대상”이라고 말했다. 신동욱 국민의힘 의원은 “무차별 (공직자) 탄핵으로 국정을 마비시킨 것이 바로 내란”이라며 “이렇게 해서 나라가 여기까지 왔다. (민주당이) 지금 2차 내란을 벌이고 있다”고 맞섰다. 손인혁 헌재 사무처장은 ‘국민의힘에 대한 위헌정당 해산 심판이 들어오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이 의원 질의에 “(헌재는)통진당 사건에서도 정당해산 심판은 매우 신중하고 최후적인 수단으로서만 활용돼야 함을 강조한 바 있다”며 “사건이 들어오면 재판부에서 적절한 판단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비판했다. 조배숙 의원은 “지금 (민주당이) 4심제를 얘기한다”며 “대법원에서 1년에 처리되는 재판 건수 중 30%를 헌재에서 재판소원해 소화할 수 있겠는가. 그러면 재판 확정이 늦어져 권리구제가 안 된다”고 지적했다. 곽규택 의원은 “그 사건들을 처리하려면 재판연구원들을 한참 늘려야 한다”며 “헌재에서 ‘국민의 기본권에 충실하기 위해서’라는 탁상공론적인 입장으로 찬성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신 의원은 “이 시점에 4심제는 이재명 대통령 단 한 명을 위한 4심제”라며 “대법원은 못 믿겠고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해 준 헌재를 한번 믿어보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손 처장은 재판소원에 대한 입장을 묻는 송석준 국민의힘 의원에게 “국민 기본권 보장과 헌법적 가치 실현을 위해 재판소원이 도입되면 좋겠다는 것이 저희 입장”이라고 밝혔다. 손 처장은 “재판소원 문제는 오래전부터 학계와 실무계에서 주장해온 내용”이라며 “재판소원을 통해 국민의 기본권이 실질화될 뿐 아니라 모든 재판 과정에서 헌법 정신이 투영돼 실질적 법치국가 실현에 더욱 기여한다는 게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헌법 이론이고 주류적 견해”라고 말했다.
‘재판소원 도입은 4심제’라는 야당 주장에 대해서는 “같은 사법 작용이라 할지라도 일반 법원과 헌재의 사법권은 성격이 다르다”며 “재판에 대해 헌법소원을 하더라도 그건 특수한 헌법적 문제에 대해 판단하는 것이라 4심제로 단정하는 건 조금 모순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상환 헌재소장은 국감 시작 직후 인사말을 한 뒤 자리를 떴다가 마무리 발언을 하기 위해 돌아왔다. 김 소장은 “헌재는 1997년 12월24일 결정에서 법원의 재판을 헌법심판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는 견해는 기본권 보호 측면에서 더 이상적이지만 입법권자가 해결해야 할 과제라는 입장을 밝혔다”며 “주권자인 국민과 국회의 평가와 의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손 처장은 민주당이 추진 중인 ‘내란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 “합법론과 위헌론의 대립이 있고, 둘 다 충분한 헌법적 근거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 ‘검찰이 헌법기관이냐’는 장경태 민주당 의원 질의에는 “검찰의 헌법기관성에 대해 헌재가 판단한 바는 없다”고 말했다. 정부·여당이 검찰청을 폐지하고 공소청을 신설하려는 데 대해 검찰 등 법조계 일각에선 헌법에 ‘검찰총장 임명’을 국무회의 심의 사항으로 명시했다는 등 이유로 위헌이란 주장을 제기한다.
제주 갤러리 두모악을 만든 김영갑그의 사후에도 20년 지켜낸 박 관장재정난 딛고 “모두가 주인” 되려면정부와 제주도가 해야 할 일이 있다
얼마 전 강연을 위해 제주에 있는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에 다녀왔다. 개인 공부가 많이 밀려 있는 터라 원고나 강연 요청에 잘 응하지 않는데 거절하기가 어려웠다. 채권자가 모르는 내 빚이 있었기 때문이다.
15년 전, 삶의 기반이었던 공동체가 해체된 후 나는 분노와 두려움, 불안으로 날뛰는 마음을 어쩌지 못해 제주로 도망쳤다. 틈만 나면 마음속에 미운 사람을 불러다가 할퀴고 찌르고 나 자신까지도 고문대에 올려놓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김영갑을 모른 채 김영갑갤러리를 찾았다. 그날의 느낌을 뭐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방이 고요한 가운데 내 마음에는 바람이 세차게 불었고 노을이 붉게 번졌다.
그날 나는 김영갑이 말한 동박새였는지도 모르겠다. 동백꽃을 꽂아두었더니 열어둔 창문으로 들어온 작은 새. “요란스럽게 떠벌리지 않더라도 말없이 감동을 전해줄 수 있다면 한 사람 두 사람 사진을 보러 찾아올 것이다.” 전시회도 그랬다고 한다. 최선을 다해 준비하지만 아무도 초대하지는 않는다고, 그저 작품을 걸어놓고 혼자서 생각에 잠긴 뒤 그 생각으로 다음 작품을 준비한다고 했다. 다만 무심코 들어온 동박새가 그가 본 것을 함께 보고 그가 느낀 것을 함께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자신의 사진이 그런 동백꽃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김영갑의 책 <그 섬에 내가 있었네>를 읽었다. 그 책에는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자기 몫의 삶에 치열한” 사람이 있었다. 두렵지 않아서, 불안하지 않아서, 유혹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냥 “한겨울 매서운 바람에도 물질하는 해녀와 한여름 무더위에도 김을 매고 수확하는 노인들”처럼 묵묵하게 걸었던 사람 말이다. 방에서 출구를 찾느라 이곳저곳에 부딪혔던 동박새처럼 나 역시 책을 읽고 여기저기 부딪혔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부끄러워서 그랬다. 그 후에도 몇차례 내 안에서 무언가가 날뛸 때마다 두모악의 정원에 잠시 앉아있다 돌아왔다.
내게 강연을 요청한 이는 나를 김영갑처럼 걷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김영갑을 보고 황급히 도망쳤던 동박새라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청년들이 길을 찾고 있고 무엇보다 두모악을 살려내야 한다는 말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내 빚을 조금이나마 갚고, 길을 찾는 사람에게는 길을 잃은 사람의 이야기도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강연 전 박훈일 관장이 인사말을 했다. “김영갑 선생님이 제주에 사신 게 20년, 그리고 제가 이곳을 지킨 지 20년이 지났습니다.” 그 한마디에 가슴이 내려앉았다. 김영갑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동박새는 모른다. 동백꽃을 피우기까지 나무가 견뎌낸 고통의 시간을.” 15년 전 김영갑을 모른 채 그가 열어둔 문으로 날아든 것처럼, 나는 또 한 사람을 모르고 여기에 왔구나 싶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삼촌을 만나서 한집에 살았어요.” 박훈일은 제주에 온 김영갑을 따라다니며 사진을 배웠고, 누구 말마따나 “김영갑을 가장 사랑한 죄”로 두모악 지킴이로 살아왔다. 김영갑이 루게릭병으로 굳어가는 근육을 달래가며 일구기 시작한 정원을 지난 20년간 가꾼 것도 그였다. 내가 조용히 앉아있다 돌아왔던 그 정원 말이다.
김영갑의 20년만큼이나 박훈일의 20년도 쉽지 않은 시간이다. 두모악 사정을 말해달라는 요청에 그는 세간살이 보여주는 가난한 사람처럼 쭈뼛댔다. 코로나 사태로 관람객이 급감한 후 이제는 알음알음 찾아오던 사람들까지 별로 없다고 했다. 재정이 어려워 작년에는 몇달간 문을 닫기도 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매번 임대 계약을 갱신하고 있는 학교 건물이 낡아 작품들이 훼손될까 걱정이라고 했다.
해법을 묻자 그는 “모두가 주인인 곳이 되어야 합니다”라고 했다. 정직한 사람들의 말은 이렇게 조미료 넣지 않은 음식처럼 심심하다. 그런데 이 심심한 말을 그는 힘주어서 여러 번 했다. 뭔가 더하고 싶은 말이 있는 눈치인데 꾸미지 않는 이 사람은 더하지도 않는다.
모두의 것이 된다는 것은 단지 모두가 누린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두모악이 모두의 것으로 지속 가능하려면, 그래서 나 같은 동박새들이 무심코 드나들 수 있으려면, 그것을 뒷받침할 공적인 운영과 지원 체계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를 초대한 활동가가 박훈일을 가리키며 슬픈 얼굴로 말했다. “김영갑 선생이 돌아가신 후 20년을 저 한 사람이 지켜왔어요.” 그는 틀림없이 대단한 사람이다. 모두의 것을 혼자서 짊어지고 있는 개인은 위대하다. 그러나 그런 개인에게 기대고 있는 사회는 한없이 초라하다. 분명 정부와 제주도가 해야 할 일이 있다.
미국 조지아주에서 한국인 노동자들이 구금되었을 때, 정부는 왜 캄보디아 사태 때처럼 자국민 보호를 위해 강력하게 항의하지 않았을까. 미국을 위해 일하러 간 국민이 관타나모 수용소의 전쟁포로처럼 끌려나가는 모습을 보며 분노와 충격으로 잠 못 이룬 국민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기울어진 동맹 때문이다. 미국은 애초에 동맹으로 시작된 나라가 아니었다.
1866년 제너럴셔먼호 사건과 1871년 신미양요는 미국의 한반도 침략이 핵심 요인이다. 이후 이 땅은 150여년 동안 미국의 이익을 위한 교두보로 기능해왔다. 1905년 조선에 대한 일본의 종주권과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종주권을 주고받은 가쓰라·태프트 비밀협정이 명료하게 보여준다. 당시 미국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러시아를 견제해줄 일본의 조선 지배를 원했다. 해방 직후 점령군으로 들어온 미군정은 상해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았다. 친일파 청산과 자율적인 정부 구성을 위한 민족주의자들의 움직임마저 강제로 해산시켰다. 미군정의 직접 통치는 전범국인 독일·일본에서조차도 하지 않은 일이다. 식민지 쟁탈전의 후발주자로서 무주지론을 내세워 한국에 대한 군사점령을 정당화했다.
한반도 분단은 미국이 획정했다. 미국의 이념을 지키기 위한 장벽은 역사와 문화는 물론 한국민의 삶을 반토막냈다. 해방공간과 6·25전쟁 사이에 백성 수십만명이 ‘빨갱이’라는 낙인하에 학살당했다. 미군정이 정착시킨 반공주의가 가져온 결과다. 다음주에 열릴 <여순사건 77주년기념 국제학술 심포지엄>의 부제가 ‘냉전과 여순사건, 그리고 평화적 과제’라 하지만, 그 과제의 난관은 미국을 역사의 법정에 세우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신냉전 때문에 정의의 실마리인 과거의 기억이 또다시 묻히는 것은 아닐까. 2년 뒤에 일어날 동족상잔의 전쟁을 예견한 듯 동포를 죽이라는 명령에 반대한 것이 무슨 죄일까. 동포는 이념보다 진한 삶의 원형이 아닌가.
한·미 상호방위조약이나 한·미 주둔군지위협정의 불공정성은 재고의 여지도 없다. 이는 냉전의 산물이다. 미국은 자신들이 군사적으로 돌본 한국이 민주주의 모범국가가 되었다고 자랑하지만, 그사이 얼마나 많은 백성이 고통받았던가. 미군은 치외법권이다. 윤금이 및 효순·미선 살해 사건, 독극물 방류와 탄저균 유입, 기지 내외의 환경오염은 오만함의 극치에 달한다. 군산공항에 핵무기를 가져다 놓아도, 부산항에 세균실험실을 설치해도 정부는 할 말이 없다. 주민을 짓밟고 배치된 소성리 사드는 중국을 적으로 돌렸다. 국내법을 위반한 미군기지 설치는 진정한 동맹이라 할 수 없다. 상대방의 법을 존중하는 것이 동맹의 기본이다.
이제 미국은 주한미군과 한국군이 중국을 견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주민들을 내쫓고 지어준 세계 최대의 평택 미군기지에 대한 소유권을 달라고 한다. 하룻밤의 환대에 집마저 달라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그럼 대신 캘리포니아를 달라면 줄 것인가. 한·미 조약과 협정은 주한미군의 특권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 헌법을 무력화하고 있다. 최근 부각된 미대사관 임대비용 체납도 막대하다. 특권은 고분고분한 한국에 대한 관세폭탄으로 되돌아왔다.
우리는 동맹이란 미명하에 베트남전에 뛰어들었지만 미국처럼 타국을 침략한 적은 없다. 중국이든 북한이든 일본이든 러시아든 평화적으로 지내고 싶다. 한·미 동맹은 서로의 평화를 지키기 위한 것이 본질이다. 마땅히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주권을 침해할 수 없다. 한국의 주권을 무시하는 미국과의 동맹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또한 모든 조약·협정들을 동등한 입장에서 초기화해야 한다. 주권국가에 외국군이 주둔한다는 사실 자체가 비정상이다. 국민주권을 내걸고 있는 현 정부는 그 말의 참된 의미를 반드시 증명해야 한다. 헌법을 예외 없이 정상화시키는 것이 윤석열 정부의 불법계엄을 막고 새 정권을 창출시킨 국민에 대한 보은이자 보상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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