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소사례 [기고]규제과학, K바이오헬스 주춧돌 되어야
작성일 26-01-21 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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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또또링2 조회 22회 댓글 0건본문
규제과학은 식품·의약품 등 안전관리 전반에 대한 과학적 데이터를 분석해 합리적 규제 기준을 도출하는 융합 분야다. 인공지능(AI), 디지털 헬스 등 과거에 없던 신기술이 빠르게 등장하면서, 변화에 걸맞은 새로운 평가 체계를 적기에 구축하는 것이 규제기관의 핵심 규제 역량 중 하나가 되었다.
규제 역량이 기술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혁신 제품의 허가는 지연되고, 환자는 치료 기회를 잃으며, 기업은 시장 진출에 타격을 입는다.
반면, 과학적으로 정립된 규제 기준은 기업의 시행착오를 줄이고 안전을 설계하는 나침반이 된다. 이 기준을 통과해 품질을 인정받은 제품은 시장의 신뢰를 얻고, 그 성공은 다시 첨단바이오 연구·개발(R&D)의 마중물이 되는 선순환으로 이어진다. 규제기관이 시장 진입의 장애물이 될지, 혁신을 돕는 퍼실리테이터가 될지는 결국 규제과학의 역량과 수준에 달려 있다.
우리 정부는 이미 규제과학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국민의 안전하고 건강한 삶을 위해 식품·의약품 등 안전관리가 규제과학에 기반해야 한다는 점을 2023년 전부 개정된 ‘식의약규제과학혁신법’에 명시했다.
또 국가가 규제과학 혁신을 위해 노력할 책무가 있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당시 식약처 차장으로서 입법 과정에 참여했던 입장에서, 이 법은 급변하는 기술 환경에 직면한 규제 패러다임이 전환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현 정부 들어 규제과학 R&D 예산을 대폭 늘리고 인재 양성과 규제 정합성 검토를 강화하는 등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점은 고무적이다. 식약처 역시 ‘규제과학정책추진단’이라는 전담 조직을 통해 규제과학 정책 마련을 가속화하고 있다. 하지만 규제과학 혁신은 규제기관만의 노력으로 완성될 수 없다. 산·학·연·관이 함께 규제 정책을 과학적이고 전문적으로 뒷받침할 생태계를 구축해, 각 분야의 규제 역량이 동반 강화될 때 비로소 가능하다.
다행히 2022년 4월 ‘한국규제과학센터’가 설립돼 연구·개발 지원과 인력 양성 등 ‘식의약규제과학혁신법’의 취지에 따른 전문기관 역할을 수행해 왔다.
다만 민간 재단법인 형태에 머물러 있어 사업의 지속성이 불투명하고 공적 역할을 확대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제는 법정화 등을 통해 역할을 제도적으로 명확히 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이를 통해 바이오헬스 생태계를 뒷받침하는 규제과학 역량이 강화되고, K바이오헬스 산업의 과학적 인프라가 확고히 자리 잡기를 바란다.
우리는 ‘자카르타’를 알지 못한다. 세계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인도네시아가 ‘제3세계’ 국가들의 결속을 다진 ‘반둥 회의’ 개최국이라는 정도는 알 수도 있다. 하지만 반둥 회의 이후 자카르타에서 벌어진 반공 대량학살의 여파가 동남아시아를 넘어 라틴아메리카까지 휩쓸며 ‘자카르타’가 학살의 은유가 됐다는 냉전사에 대해선 들어본 바 없다. 21세기 한국에도 ‘망령’처럼 남아 있는 반공 이데올로기가 은폐한 세계사적 비극이다.
<자카르타가 온다>는 1960년대 인도네시아공산당(PKI) 대량학살 사건을 주제로 삼아 학살을 주도하고 실행한 세력과 그들의 배후였던 미국의 움직임, 이를 통해 전 세계로 확산한 반공주의의 흐름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어떻게 만들어 놓았는지 살펴보는 역사 교양서이다.
국제전문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2016년 브라질 특파원으로 있으면서 극우 정치인 보우소나루의 부상과 반공 세력의 준동을 목격하게 된다. 이듬해 자카르타로 옮겨가 현대사 관련 콘퍼런스에 참여했다 ‘공산주의자’라는 모함과 협박을 받는다. 이는 남아메리카에서도 받아본 종류의 공격이었다. 그때껏 연결해서 생각할 수 없었던 전 세계적 흐름을 포착하게 된 그는 “두 나라에 만연한 피해망상의 근원인 1960년대 중반의 트라우마적 공백”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책은 냉전 시기 미국 정부가 전 세계에서 반공주의를 지원하고 공모한 과정과 그 후과를 다룬다. 원제목인 ‘자카르타 메소드’는 1965~1966년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대량학살 사건을 가리키는데, 당시 좌파 정치 세력과 개혁 세력을 말살하려는 목적으로 50만~100만명이 학살당했다. 저자는 ‘반공’과 ‘대량학살’이 쌍으로 움직이며 세계를 휩쓴 비극이 어떻게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했는지, 그 전사로부터 출발해 참혹한 전개 과정을 넓은 시야로 따라간다.
좌파 말살 목적 100만명 죽음 내몬인도네시아공산당 대량학살 다뤄
냉전 시기 미국의 반공주의 지원제3세계 독재정권들과 이해 맞아각국서 유사한 학살·은폐 빚어내오늘의 세계 질서 만들어낸 비극
2차 세계대전 이후 자유진영(1세계)과 공산진영(2세계)으로 갈라진 냉전의 복판에서, 제국주의 식민지였던 여러 나라가 제3세계라는 이름으로 등장했다. 오늘날 세계 최대 무슬림 국가인 인도네시아는 1960년대에도 인구가 1억명에 달하는 동남아시아의 핵심 국가였다. 반둥 회의 당시 PKI는 당원 숫자만 전 세계 3위인 공산당이었는데, 비폭력 합법 노선의 운동을 펼치며 노동자·농민들의 지지를 받았다. 공산주의에 대한 적대감과 공포에 휩싸인 미국과 인도네시아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 정권의 관계가 점차 어긋나고, 미국의 반공 국제 전략과 충돌하면서 파국은 시작됐다.
1965년 9월30일 중간급 군 간부들에 의한 쿠데타가 발생해 장군 6명이 살해당한다. ‘9월30일 운동(G30S)’으로 불리는 이 쿠데타는 12시간 만에 진압되고 우파 장군 수하르토가 이끄는 군이 나라를 통제하게 된다. 수하르토는 의도적이고 선동적인 날조를 이용해 ‘친공’ 쿠데타의 배후에 PKI가 있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공산당 여성운동단체 그르와니 회원들이 벌거벗고 춤추며 장군들을 난도질하고 고문하여 성기를 절단하고 눈알을 뽑아 결국에는 죽였다고도 했다.
미국 정부는 이후 30년 독재를 하는 수하르토가 반공 서사를 만드는 초기 단계부터 각종 이동통신장비를 공급하고, 군을 진짜 지도자로 암묵적으로 승인했다. 앞서 미국은 군사학교를 통해 군인들에게 반공의식을 주입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군부를 지원했는데, 권력의 기회를 잡은 군부 세력은 미국 주도 체제에 편입되고 싶어 했다. 그 결과가 여섯 달 동안 걷잡을 수 없이 번진 혐오와 학살이었다.
인도네시아 최서단에서 시작된 폭력이 중부 자바와 동부 자바를 지나 발리에 이른 것은 12월이었다. 힌두교 인구가 많은 발리에서 벌어진 폭력은 그중에서도 최악이었다고 한다. 학살에 나선 사람들은 지인이었고, 정부의 토지개혁안에 반대해온 민병대 폭력배들도 가담했다. 책은 당시 아버지를 잃은 어린 소년 아궁의 기억을 전한다.
“그곳은 집단 매장터였다. 그들은 뼈들을 보면서 해골을 들어올렸다. 누가 소리쳤다. ‘이게 라카 아저씨야!’ 하지만 아니다. 그 해골은 아닌 것 같았다. … 그들은 한참 동안 시체의 잔해 속을 애타게 뒤졌다. 그러다 누군가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거기에는 ‘해골과 뼈가 너무 많이’ 있었다.” 당시 발리 인구 중 5%, 8만명가량이 숨졌다고 한다. 시간이 좀 더 흐른 뒤 처형장으로 쓰이던 해변 스미냑에 첫 번째 관광호텔이 들어섰다.
당시 소련을 비롯한 공산 세력은 저마다 계산에 따라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다. 인도네시아 군부의 학살은 이후 라틴아메리카에서도 좌파 및 개혁 세력을 제거하는 데 매우 성공적으로 활용됐다. ‘자카르타’라는 말은 미국의 지원을 받아 다른 권위주의적 독재정권이 실행한 유사한 학살 행위들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칠레에서 미국이 지원한 군부 쿠데타로 실각한 살바도르 아옌데의 친척 이사벨 아옌데가 쓴 <영혼의 집>에도 ‘자카르타’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독자들에게 한국 현대사가 겹쳐보일 수밖에 없는 책이다. 반공주의 폭력이 ‘또 다른 얼굴’로 한국에서 반복됐기 때문이다. 발리의 비극에선 한강 작가가 제주 4·3사건에 대해 쓴 <작별하지 않는다>를 떠올리게 되고, 자카르타에선 5·18민주화운동을 “시간과 공간을 건너 계속해서 우리에게 되돌아오는 현재형”이라고 기록한 <소년이 온다>를 만난다.
저자는 “이 책에 담긴 이야기의 상당 부분은 1953년 이후에 일어난 일이지만, 한국은 끔찍한 의미에서 시대를 앞서갔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참혹한 전쟁 이후 남한이 새로운 패권국으로부터 세계체제에서 아주 특권적인 지위를 부여받”은 덕분에 1세계의 위치로 이동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짚는다. 우리가 사는 세계를 낯설게, 반성적으로 성찰하게 하는 책이다.
“그래, 이런 게 영화지.” 눈 오는 날 넘어지면서 병원에 가서 깁스를 하고 온 날이었다. 갑자기 움직일 수 없는 다리와 함께 뭘 해야 할지 몰라서 침대에 누워 넷플릭스 영화 <기차의 꿈>을 봤다. 모처럼 영화다운 영화를 보는 즐거움에 흠뻑 취해 나만의 ‘깁스 홀리데이’를 자축하고 싶은 마음마저 들게 하는 영화였다. 게다가 영화가 끝나면 이런 메시지가 우주에서 온 희미한 교신 신호처럼 마음에 남는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혹시 이런 게 유령 같은 양자 중첩인가? 이제 막 카를로 로벨리로부터 시작되는 상호 연결적 예술여행을 시작해 보겠다고 선언했는데, 그것도 아주 멀리서 아무도 들어 주는 사람 없을 것 같은 조용한 산골 마을에서 혼자 선언했는데 그 선언에 호응하는 누군가가 혹시 내 발목에 먼저 살짝 금을 내고 그 다음 이 영화를 내게 보내준 건가? 그럴 리 없겠지만 참 신기했다.
영화의 주인공은 떠돌이 벌목꾼이다. 이 숲 저 숲 돌아다니며 나무를 자르거나 철도를 깔기 위해 나무를 옮기는 일을 하는 사람. 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일이 많고 집을 비우는 일도 많은 사람. 그리고 그 직업 때문에 겪게 되는 상실과 슬픔. 그리고 모든 걸 다 견디어낸 주인공이 죽기 전에 자신의 살아온 생애로 깨닫게 되는 이 세계의 진실. 그냥 저절로 알게 되는, 그게 자연의 힘이고 예술의 힘이지 싶은 것들. 덕분에 이제 나무 한 그루도 허투루 보지 않게 된 나는 나무와 기차에 대해, 그리고 그들이 함께 꾸었을 꿈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인상파 화가들만큼 나무를 좋아하는 이들이 없었던 것 같은데 그들의 그림 속에서 나무는 그저 초록색과 갈색으로 그려지는 풍경의 일부일 뿐이다. 정확히 그들은 나무가 아니라 나무에 부딪혀 산산조각 난 빛의 잔해들을 그렸다. 그 이상의 보이지 않는 본질을 그려보려 했던 세잔 같은 화가가 가장 존경받는 거장의 반열에 올랐지만 그런 세잔조차도 다른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빛이 닿지 않는 나무의 뿌리는 늘 생략했다.
그런데 이 영화 <기차의 꿈>은 달랐다. 나무가 어둠 속에서 지하의 수로를 찾아 뿌리를 뻗는 고투는, 인간이 산을 깎고 강을 가로질러 철길을 놓는 고투와 닮아 있다는 걸 알게 했다.
그뿐인가? 철길 아래 눕혀진 침목들은 한때 숲이었던 기억을 짓누르며 기차라는 현실의 무게를 받아내는 거다.
시간의 방향에서 생각해보는 것도 재밌다. 살아생전 수직으로 살던 나무는 죽어 선로 아래 침목이 됨으로써 비로소 대지에 수평으로 눕는 건지 모른다. 한강 작가 스타일로 표현하면 죽은 나무가 살아 있는 기차의 속도를 견디고 있는 셈인데, 기차는 그 덕분에 이 나무의 사후(死後) 위를 빠르게 달릴 수 있다.
그러한 기묘한 공생 관계 속에서 어쩌면 꿈이 이뤄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그렇게 평생 한 지점에 박힌 채 이동을 꿈꿨을 나무의 갈망을, 인간이 만든 기차라는 ‘금속의 짐승’이 대신 이뤄주는 거다!
숲에서 나무를 베는 벌목꾼 이야기가 어떻게 <기차의 꿈>이라는 소설이 되고, 다시 영화가 됐는지 생각해 보는 일은 내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미심장한 사건이 되었다. 그것은 미술관에서 몇 시간씩 줄을 서서 마주한 인상파 화가의 그림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건넸다. 생각은 더 깊어졌고,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 나가는 수면의 흐름 속에서 감동의 파동도 한층 깊어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이 모든 생각의 끝에서 요제프 보이스가 카셀의 거리마다 심어놓은 7000그루의 떡갈나무를 떠올린다. 그는 나무 곁에 차가운 현무암 비석을 나란히 세우고 그것을 ‘사회적 조각’이라 불렀다. 나무 한 그루를 심는 행위가 세상의 모든 단절된 것들을 다시 잇는 치유의 시작이 될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결국 예술이란, 보이지 않는 뿌리를 상상하는 일이며, 끊어진 선로를 마음속에서 잇는 작업인 동시에, 보통 사람들이 자기 삶의 공간 속에서 나무처럼 자라는 꿈들을 계속 지켜낼 수 있도록 누군가 제안하고 연결하고 실행하는 일이구나 생각한다. 이제 곧 이 답답한 석고 껍질을 벗어던지는 날이 올 텐데, 그날이 오면 일단 기차부터 타고 싶다. 기차 속에서 창밖으로 멀어지는 나무들을 보고 싶다. 그러다 어느 역에서 내리게 되겠지. 거기가 어디가 될지는 아직은 나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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