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전문변호사추천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동전던지기, 세자 교체, 폐비 복위…종묘, 왕실의 ‘비밀 공간’에서 무슨 일?
작성일 25-12-15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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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가 1995년 종묘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면서 인정한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Outstanding Universal Value)’의 항목이다.
유네스코가 제시한 6가지 등재기준(OUV) 중 4번째(ⅸ)에 해당되는 항목이다. 즉 ‘(ⅸ)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라는 것이다.
최근 서울시의 종묘 앞 초고층 건물(145m) 재개발 계획이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데, 논쟁의 초점이 주로 이 종묘라는 공간 및 건축물의 의미에 모여있다.
■귀신이 머무는 곳
필자는 공간보다는 종묘에 담긴 역사적, 상징적 의미를 살펴보려 한다.
종묘는 조선 왕조의 왕과 왕비의 신주(죽은 이의 아름을 적은 나무패)를 모시는 국가 사당이었다.
조선 건국 3년 뒤인 1395년(태조4) 창건됐다. 왕실은 ‘5묘제’에 따라 개국시조(태조)와, 4대 조상(고조·증조·조·부)의 신주를 종묘에 모셨다.
이후 새로운 신주가 들어설 때마다 태조를 제외하고 4대가 지난 신주는 차례차례 빠져야 했다.
그렇게 빠지는 신주는 별전(영녕전·1421년 조성)에 모셨다. 그런데 갈수록 문제가 생겼다. 개국 시조인 태조 외에 ‘종묘 정전’에서 영영 제사를 받는 ‘불천위(不遷位)’가 늘어난 것이었다.
게다가 선왕의 양자로, 혹은 반정으로 즉위한 왕은 아무래도 종법상 정통성이 결여되었다. 그럴 때 왕은 친아버지나 큰아버지, 고조할아버지를 추존왕으로 세운 뒤 그들의 신주를 종묘에 입주시키는 편법을 썼다. 그렇게 덕종(성종의 친아버지), 원종(인조의 친아버지), 진종(정조의 큰아버지이자 양아버지), 익종(헌종의 친아버지), 장조(익종의 양자로 입적한 고종의 4대조인 사도세자) 등이 종묘에 ‘입주’했다.
■종묘의 입주자들
그러니 맨처음(1395) 정전 7칸으로 출발한 종묘는 정전 19칸과 영녕전 16칸으로 급증했다.(폐위된 연산·광해군 제외)
이중 창업군주인 태조를 비롯, 태종·세종·세조·성종·중종·선조·인조·효종·현종·숙종·영조·정조·순조·문조(익종) 등은 ‘불천위’로 종묘 정전에 영구 입주했다. 그런데 정전에는 이 15명 외에도 헌종·철종·고종·순종 등 4명이 남아 있다. 왜냐. 조선왕조가 멸망했기 때문에 이들의 뒤를 잇는 임금이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분들은 영녕전으로 옮겨갈 필요가 없게 됐다. 총 19명이다.
별묘(영녕전)엔 누가 입주했을까. 목조·도조·익조·환조·정종·문종·단종·덕종·예종·인종·명종·원종·경종·진종·장조·영친왕 등 16명이다.
이 명단을 보는 분들은 고개를 갸웃거릴 것이다. 즉 태조·태종·세종·성종·영조·정조 같은 분들은 ‘불천위’의 대접을 받을만 하다.
하지만 중종·선조·인조·순조·익종 등은 무슨 자격으로 불천위가 되었을까. 하기야 선조 이후, 즉 조선 후기 들어 불천위가 되지 않고 영녕전으로 이주한 ‘재위 왕’은 경종(1720~1724) 뿐이다. 또 재위기간이 너무 짧거나 억울한 죽임을 당한 정종·단종·예종·인종·경종 등의 심사도 편치않을 듯 싶다.
그 가운데 대리청정(8년여)과 2년3개월(재위기간)까지 해서 총 10년이나 조선을 다스렸고, 측우기까지 발명한 문종의 경우는 누가 봐도 억울할 듯 싶다. 문종이 다른 ‘영녕전’ 임금과 비슷하게 혈연적인 후사가 끊겼으니 영녕전 이사의 홀대를 받았던 것이다.
■‘종묘 사직’을 위해
예부터 ‘나라를 위해~’를 ‘종묘·사직(宗廟·社稷)을 위해~’나 혹은 줄여서 ‘종사(宗社)를 위해~’라는 식으로 표현했다.
무슨 뜻일까. ‘종묘’는 국왕의 선조를. 사직은 토지신인 ‘사(社)’와 곡식신인 ‘직(稷)’을 모신 곳이다.
위로는 조상을 제사지내고, 아래로는 백성을 섬긴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중 종묘는 군주가 천명을 받아 나라를 건국한 창업주와 그 후손이 이어가는 왕조의 정당성과 정통성을 상징하는 공간이었다.
왕조의 중대한 결정을 수행하고 국가의 중요 의례를 거행하기도 했다.
‘사직’은 어떤 의미일까. 예부터 ‘군주는 백성을 하늘로 삼고,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여긴다(王者以民爲天 而民以食爲天)’(<사기> ‘열전·역이기전’)고 했다. 그러니 군주는 ‘군주의 하늘인’ 백성이 먹는 곡식과, 그 곡식을 풍요롭게 만드는 땅을 귀히 여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군주는 ‘종묘와 사직’을 걸고 정사를 펼칠 수밖에 없었다. 예컨대 1425(세종7) 6월 19일 세종은 “재앙을 물리칠 일이 있으면 언제라도 종묘와 사직단에 제를 올리게 하라”는 명을 내렸다.
■동전던지기로 천도?
종묘에서 열린 국가행사 중 눈길을 끈 이벤트가 1404년(태종4) 10월6일 펼쳐졌다. 이른바 ‘동전던지기로 도읍지 정하기’ 행사였다.
즉 1392년 개국한 조선 왕조는 ‘한양’을 새왕조의 도읍지로 삼았다. 1394년(태조3) 10월25일 천도가 이뤄지고 정궁인 경복궁과 함께 종묘와 사직단 건립이 이어졌다.(1395)
하지만 1398년(태조7) 경복궁에서 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 피바다를 이룬다.
이방원(태조의 5남·태종)이 주도한 이 정변에서 세자인 이방석(?~1398)과 이방번(1381~1398) 등 이복동생이 무참히 살해됐다. 정변 직후 즉위한 정종(이방과·태조의 2남·재위 1398~1400)은 서둘러 개경으로 환도한다.(1399년 2월26일) 한양 천도 4년4개월만의 일이었다.
하지만 환도 후 1년도 안된 1400년 1월28일 제2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 태종(이방원·재위 1400~1418)이 등극한다. 즉위한 태종은 ‘재천도’를 구상한다.(1404) 맨처음 천도했던 한양(경복궁)과 무악(안산 앞 일대)가 유력한 후보지로 꼽혔다.
■한양이 ‘2길 1흉’
태종은 한양(경복궁)과 무악 땅을 둘러보기 위해 행차했다.(1404년 10월4일)
안산에 올라 무악땅(신촌·연희·망원·만리동 일대)을 살피던 지관들은 “한양보다 오히려 탁 트인 무악이 낫다”고 주장했다. 이에 태종은 “부왕(태조) 때는 ‘한양(경복궁)이 좋다’고 하던 자들이 이제와서는 왜 무악을 주장하냐”고 질책한 뒤 발길을 돌렸다.
이후 한양(경복궁)을 둘러본 태종은 종묘 앞에서 어가를 멈춘 뒤 묘안을 내놓았다.
“이제 종묘에 들어가 송도(개경)와, 한양(경복궁), 무악 등 도읍지 후보 세 곳을 두고 점을 쳐서 결정하겠다…더는 왈가왈부하지 마라.”
태종은 “모든 이가 쉽게 그 점의 결과를 알 수 있는 ‘척전(擲錢·동전던지기)’가 어떠냐”고 제안했다.
태종은 종친(태조의 조카)인 완산군 이천우(?~1417)와 조준(1346~1405) 등을 이끌고 종묘에 들어갔다. 태종은 향을 올린 다음 꿇어앉았고, 왕명을 받은 이천우가 쟁반 위에 동전을 던졌다. 그 결과 한양은 ‘2길(吉)1흉(凶)’, 송도(개경)과 무악(毋岳)은 둘다 ‘1길 2흉’의 괘를 얻었다.
태종은 이 점괘에 따라 새로운 도읍지로 ‘한양’을 최종 낙점한다. 이를 두고 ‘종묘·사직의 운명을 가를 도읍지를 결정하는데 동전던지기가 웬말이야’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동전던지기(척전)도 점의 한 방법이었다. 철저하게 <주역>의 괘에 따랐다. 한꺼번에 동전 3개를 던져 앞 뒷면이 나오는 결과에 따라 하나씩 괘(卦·주역의 상징부호)를 만들어 길흉(吉凶)을 판단한 것이다.
■세종의 세자 등극을 고함!
1418년(태종18) 6월3일에도 중대결단한 내용을 조상에게 고하는 대사건이 종묘에서 일어난다.
세자를 충녕대군(세종·재위 1418~1450)으로 교체한 사건이다. 세자(양녕대군 이제·1394~1462)의 수없는 기행 및 난행을 참다 못한 태종은 “이제 천명이 세자를 떠났다”며 폐세자를 결정한다.
‘차기 주자’로는 폐세자(양녕대군)의 아들 이개(1414~1462)가 거론되었다. 그러나 “어진 사람(충녕대군을 가리킴)을 골라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도읍지를 정한 것처럼) 점을 쳐서 결정하자”는 의견을 유력하게 개진되기도 했다. 태종도 ‘점궤로 세자로 낙점하다’는 의견에 솔깃했다.
그러나 곧 “나라의 근본을 정하는 것이니 ‘어진 사람’을 고르는 것이 마땅하다”고 마음을 바꾼다. 그렇게 정리한 태종이 ‘어진 이’로 뽑은 분이 만고의 성군이 된 충녕대군(세종)이었다. 그런 뒤 종묘에 안치된 선왕들에게 세자 교체의 전말을 고하는 의식을 펼쳤다.
“…세자가 너무도 심히 패만(悖慢)하여 전혀 신하의 예절이 없어…폐하기를 청하고 충녕대군(세종)이 효성스럽고 우애스럽고 온화하고 인자하여 진실로 세자의 자격에 합당하므로 감히 고합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지만…
이렇듯 종묘는 천명을 받은 왕조의 정당성과 정통성을 상징하는 공간이었다.
그런데 고조부-증조부-조부-부 등의 직계가 아닌 이가 즉위한 경우는 어찌될까. 이 경우 의리상 선왕의 자식, 즉 부자관계를 표방해야 했다. 2대왕 정종이 동생인 정안대군(태종)을 세제가 아닌 세자로 삼은 것이 그 때문이었다.
1469년 승하한 예종(재위 1468~1469)의 뒤를 이어 즉위한 성종(1469~1494)도 그랬다.
성종은 20살에 죽은 세조의 맏아들인 의경세자(1438~1457)의 둘째 아들이었다. 예종은 세조의 둘째아들이었다. 따라서 선왕(예종)과 즉위왕(성종)은 삼촌-조카 사이였다.
하지만 종법상 왕위는 부(예종)→자(성종)로 처리되었다. 그러니까 예종을 의리상 아버지(부·황고)로, 의경세자를 큰아버지(백부·황백고)로 모셔야 했다. 그러나 성종은 친아버지를 그냥 둘 수 없었다.
1475년 성종은 명나라 황제의 고명으로 의경세자의 시호(회간왕)를 받는데 성공한다.
그런 성종에게 남은 관문이 있었다. 그것은 회간왕의 신주를 종묘에 ‘입주’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추존왕이 된 것과 ‘종묘 입주’는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왕위를 잇는 자는 선왕의 자식이니 사친(친아버지)을 돌볼 수 없다”는 게 옛 법도(<의례>)인데, 그것을 어찌 종묘에서 바꿀 수 있냐는 것이었다. 종묘 합사를 찬성하는 측도 만만치 않았다. 우선 회간왕이 명 황제의 고명을 받은 정식 국왕이 되었으니 무엇이 문제냐는 것이었다. 만약 종묘에 들어간다 해도 해결해야 할 숙제가 남아 있었다.
예종과의 차례를 어떻게 두느냐는 것이었다. 회간왕이 먼저 세자 직분에 있었고, 실제로도 형이었기에 회간왕→예종 순이라도 괜찮다는 의견도 개진됐다. 논란이 이어지자 성종은 ‘회간왕 부묘’를 두고 관리(동반 종3품 이상, 서반 정3품 이상, 예문관·대간 모두 참여)들의 중론을 모았다.
1475년(성종 6) 9월16일과 19일 두차례에 걸친 여론 조사 결과는 흥미로웠다. 의견을 낸 156명 가운데 찬성 86명, 반대 70명으로 집계됐다.
의견 개진 결과 찬성(55%)이 반대(45%)보다 많았다. 이에 성종과, 그 당시 수렴청정 중이었던 정희왕후가 회간왕(의경세자)의 종묘 부묘를 강행했다. 종묘에 부묘되는 회간왕에게는 ‘덕종’이라는 묘호가 붙었다. 덕종의 신주 위치는 예종의 위에 올랐다.
대신 호칭은 예종을 ‘황고(아버지)’, 친아버지인 덕종을 ‘황백고(큰아버지)’로 부르기로 정리했다.
■역적의 딸
그런데 추존(혹은 복위)와 종묘 부묘와 관련해서 여론을 모았던 사례가 또 있다.
7일의 왕비로 알려진 단경왕후 신씨(중종비·1487~1557)이다. 신씨는 이조판서·우의정·좌의정 등을 지낸 문신 신수근(1450~1506)의 딸이다. 1499년 성종의 둘째아들이자 연산군(1494~1506)의 이복동생인 진성대군(훗날 중종)과 혼인했다.
그러나 얽히고설킨 관계가 운명을 가른다. 연산군의 부인이 바로 신수근의 동생(거창군부인 신씨·1476~1537)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연산군의 부인(거창군 부인)과 진성대군(중종)의 부인(단경왕후)은 고모와 조카사이였다. 그런데 중종반정이 일어나자(1506년 9월2일) 신씨의 아버지 신수근이 반정에 참여하지 않은 죄로 죽임을 당했다.
신수근이 “매부(연산군)을 폐하고 사위(진성대군·중종)을 세울 수는 없다”(<연려실기술>)고 반대한 것이다. 아버지의 선택은 딸(신씨)의 운명을 갈라놓았다. 반정성공 후 불과 7일만인 9월9일이었다.
반정세력은 “‘역적의 딸’(신씨)을 왕비로 삼는다면 인심이 불안해지니 내쫓으라”고 막 즉위한 중종을 다그친다. 반정세력의 시퍼런 서슬에 중종은 신씨를 ‘버선발로’ 쫓아내고 만다. 이후 이 신씨 폐위 사건은 이후 233년 동안이나 ‘뜨거운 감자’였다.
특히 <중종실록> 1506년 9월9일자에 기록된 ‘신씨 폐출 기록’이 논란의 초점이었다. 반정세력이 ‘신씨를 왕비로 삼는다면~’이라는 가정법을 쓴 대목이다. 그래서 신씨가 애초에 왕비로 책봉된 적이 없었다는 주장이 훗날까지 제기되었다.
■538명 여론조사의 결과
그러나 <국조보감>과 <선원보략> 등 왕실기록은 달랐다. “신씨는 9월2일 중종 반정 후 중전이 되었고, 9일 쫓겨났다”고 했다. 또 1557년(명종12) 12월7일 승하한 신씨를 위해 쓴 졸기는 “중종이 즉위하자 비(신씨)도 정위(중전 자리)에서 하례를 받았다가 쫓겨났다”(<명종실록>)고 했다.
‘신씨=만 7일간의 왕비’라는 점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신씨를 복위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이어졌지만 쉽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중종에게는 신씨를 내쫓고 얻은 두 부인(장경왕후 윤씨와 문정왕후 윤씨)이 있었다.
만약 신씨가 복위되어 종묘에 모실 경우 중종의 옆 첫번째 자리는 누가 차지하느냐는 현실적인 문제까지 제기되었다. ‘폐비 신씨 복위 운동’은 숙종 대에 이르러 들불처럼 일어났다.
1698년(숙종 24) 9월30일 ‘신씨의 복위’를 주장하는 상소문이 올라왔다. 이때 숙종은 대신·종친·문무백관은 물론 지방 대신 및 유신까지 총 491명의 의견을 수렴했다.
그 결과 찬반 여론이 팽팽했다. 그러나 숙종은 “참으로 난처한 측면이 있다”고 토로하면서 복위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종묘에 복위된 신씨의 신주를 봉안하기가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결단을 내린 것은 영조(1724~1776)였다.
“폐비 신씨가 왕비가 된 적이 없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날 봐라. 내가 임금이 되었을 때 내 부인은 이미 중전이 됐다. 중종이 왕위에 이은 날 신비(단경왕후) 역시 자동으로 중전이 된 것이다.”(<영조실록> 1739년 3월11일)
영조는 “남편이 임금이 되면 부인은 당연히 그 순간부터 중전이 되는데 누가 이의를 다냐”고 매조지했다. 그러나 영조 독단으로 처리하지 않았다. 내외의 의견을 폭넓게 모으라는 지시를 내린다.
급기야 종친 및 문무백관 등이 총출동해서 신씨의 복위를 두고 찬반토론을 벌인다. 지방 관리 및 유생들의 의견도 받았다. 그렇게 토론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이가 538명이었다. 이중 1명을 제외한 537명이 ‘신씨 복위’에 찬성표를 던졌다.(<영조실록>·<승정원일기> 1739년 3월15일)
이후 신씨의 복위 및 종묘 입주 절차는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단경왕후’의 시호를 받은 신씨의 신주는 종묘의 ‘중종실’에 모셨다. 신주의 위치는 중종의 ‘원후’, 즉 첫번째 부인 자리에 놓였다.
■종묘에 떨어진 벼락
문종의 부인이자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 권씨(1418~1441)의 신주도 수난을 겪었다.
현덕왕후(1441년 난산후유증으로 서거)는 남편(문종·재위 1450~1452)이 승하하자 당연히 남편과 함께 그 신주가 종묘에 부묘되었다.(1454년 7월15일) 그러나 아들인 단종이 폐위(1455)되면서 현덕왕후의 사후도 나락으로 떨어진다. 1년 뒤(1456) 일어난 단종 복위 사건에 현덕왕후의 아우인 권자신(?~1456)이 연루됐다. 이 사건으로 권자신은 물론 현덕왕후의 어머니(아기·阿只)까지 처형됐다. 현덕왕후 역시 폐위되었고 그 신주도 종묘에서 철거되었다. 그렇게 폐위된 현덕왕후의 복위 여론은 끈질기게 이어졌다. 그러나 일부 대신들의 반대로 성사되지 못했다.
그러다 1513년(중종8) 2월28일 종묘에 때아닌 벼락이 떨어지자 비상이 걸렸다. “조종의 영혼이 있는 곳에 벼락이 웬말이냐”면서 억울하게 폐위된 현덕왕후의 복위 및 종묘 복귀론이 급물살을 탔다.
마침내 현덕왕후의 복위 및 종묘 부묘가 결정되었다. 현덕왕후는 현릉(문종릉)에 이장되었고, 신주는 종묘 문종실에 봉안됐다.
이렇듯 종묘에는 조선 왕조의 정신이 담겨있다. 지금 종묘 논쟁을 바라보면서 딱 한가지 드는 의문이 있다. 굳이 높이 145m 초고층 건물을 종묘 앞에 세워야 할 필요가 있을까. 대체 누구를 위해, 몇 명의 ‘종묘 뷰’를 위해 그렇게 죽자사자 고집을 피울까. 이해할 수 없다. 이기환 히스토리텔러 lkh0745@naver.com
<참고자료>
김우진, ‘영조의 단경왕후 신씨 복위와 의의-복위 부묘 의례를 중심으로’, <동양고전연구> 90권, 동양고전학회, 2023
문영자, ‘조선시대 추존왕의 추존론 전개와 부묘 과정’, 건국대 석사논문, 2013
신성곤, ‘종묘 제도의 탄생:종묘의 공간과 배치를 중심으로’, <동아시아 문화연구> 57권, 한양대 동아시아문화연구소, 2014
이강근, ‘조선 왕조의 신전 종묘’, <미술사학연구> 216권, 한국미술사학회, 1997
이현진, ‘조선시대 종묘의 부묘 의례와 성격’, <서울학연구> 43권, 서울시립대 서울학연구소, 2011
이혜원, ‘성종 초 덕종의 추존 과정과 그 의미’, 숙명여대 석사논문, 2018
시리아에서 미군 2명과 미국인 민간 통역사 1명이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소행으로 추정되는 공격에 숨졌다. 시리아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이 무너진 뒤 1년 만에 미국 측 첫 사상자가 발생하면서 미국과 시리아의 관계 정상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중동 안정화 구상에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IS에 대한 “강력한 보복”을 예고했다.
중동 지역 미군을 총괄하는 미국 중부사령부는 13일(현지시간) “IS 소속 무장 괴한 한 명이 매복 공격을 감행해 미군 2명과 민간인 1명이 사망했으며 미군 3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션 파넬 미 국방부 대변인은 숨진 미군 병사들이 시리아 중부 팔미라에서 IS 대테러 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주요 지도자들과 접촉하는 임무를 수행하던 중 공격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미군을 공격한 총격범은 현장에서 사살됐다. 누르 에덴 알바바 시리아 내무부 대변인은 총격범이 내무부 산하 정부 보안군 소속이며, 최근 내무부 신원조사 과정에서 ‘타크피리’ 사상을 지녔을 가능성이 포착됐다고 국영TV에 밝혔다. 타크피리는 IS를 비롯한 수니파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조직을 뜻한다. 시리아 정부는 총격범이 IS 조직원인지, 단순히 극단주의 사상을 가진 인물인지는 조사 중이다.
알바바 대변인은 다만 그가 “정부 내 고위직이 아니었고, 사령관과도 관계가 없었다”며 “신원조사를 토대로 곧 최종 조치를 결정할 예정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시리아 정부가 IS의 공격 가능성을 사전에 경고했는데도 미군을 포함한 국제연합군이 무시했다고 덧붙였다. 미 국방부 관계자는 아직 어떤 단체도 이번 공격을 자신들 소행이라고 주장하지 않았으나, 초기 평가 결과 IS 소행일 가능성이 크다고 뉴욕타임스(NYT)에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SNS 트루스소셜에 “이번 사건은 시리아의 매우 위험한 지역에서 미국과 시리아를 겨냥한 IS의 공격이었다”며 “매우 강력한 보복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은 엑스에 “전 세계 어디에서든 미국인을 표적으로 삼는다면, 미국은 당신을 끝까지 추적해 찾아내고 가차 없이 제거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번 사건은 시리아 북부 쿠르드족 분리주의 조직, 과거 독재정권의 잔재, IS를 비롯한 극단주의 단체 등 여러 세력으로부터 도전받는 시리아 임시 정부의 안보 통제력이 얼마나 취약한지 드러냈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평가했다. 미 국방부 관계자는 이번 사건이 시리아 임시정부가 통제하지 못하는 지역에서 발생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전하기도 했다.
시리아는 지난해 12월 이슬람 무장단체 하야트타흐리르알샴(HTS)이 주도하는 반군이 알아사드 독재정권을 몰아내고 임시정부를 세웠지만, 13년에 걸친 내전으로 분열된 사회를 통합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여러 무장단체가 임시정부에 통합되지 않은 데다, 지역·종파에 따른 갈등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 일부 이슬람 강경파 세력 중에는 HTS 수장 출신 아메드 알샤라 임시 대통령이 미국 등 서방에 밀착하는 행보에 불만을 품는 분위기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사드 정권 몰락 후 관계 정상화를 적극적으로 꾀해온 미국과 시리아에는 이번 사건이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시리아의 내부 안보 공백과 극단주의 위협이 여전하다는 신호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 중동연구소의 찰리 리스터 선임연구원은 “지난 6개월 동안 물밑에서 급속도로 진전되어 온 미국과 시리아 간 양자 안보 관계 형성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시점에 이번 사건이 발생했다”고 NYT에 말했다. 알샤라 대통령은 1946년 시리아 건국 이후 백악관을 찾은 첫 시리아 지도자로서 지난달 10일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가자지구 전쟁 종전과 함께 추진해온 중동 평화 구상에도 이번 사건이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구상하는 중동 안보는 가자지구 전쟁을 매듭지고 중동 정세를 안정시켜, 미군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이번 사건으로 중동 지역의 불안정성, 파병된 미군의 안전 등을 둘러싼 논란이 다시 불붙을 가능성이 있다.
NYT는 “중동 지역에 배치된 미군 병력은 과거와 비교하면 크게 줄었지만, 이번 공격은 중동 지역의 위험성과 그곳에 미군을 계속 주둔시켜야 할지에 대한 딜레마를 다시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이번 공격은 미국이 시리아 주둔 병력을 줄이기 시작한 지 몇 달 만에 발생하기도 했다. 미국은 알아사드 정권 붕괴 후 시리아 안보 환경이 달라지자 올해 초 약 2000명이던 시리아 주둔 병력을 약 1000명으로 줄였다.
릭 크로퍼드 하원 정보위원장(공화·아칸소)은 “이번 사건은 해외 주둔하는 미군에 대한 급진 이슬람 세력의 위협이 여전한 현실이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며 “IS를 비롯한 모든 급진 테러 단체를 계속 치명적인 위협으로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덧셈·뺄셈을 잘하지 못하는 초등학교 1학년 학생에게 ‘딱밤’을 때리고, 벌을 준 40대 교사가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청주지법 형사2단독 신윤주 부장판사는 아동학대 혐의로 불구속기소 된 A씨에게 벌금 200만 원을 선고했다고 14일 밝혔다.
충북지역의 한 초등학교 1학년 담임교사인 A씨는 지난해 11월 교실에서 B군 등 학생 2명의 머리에 딱밤을 때리고, 앉았다 일어서기를 5∼10분간 시킨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B군 등이 덧셈·뺄셈을 잘하지 못한다는 이유 등으로 이 같은 벌을 내린 것으로 조사됐다.
신 부장판사는 “피고인은 아동들의 학습 능력이 향상되길 바라는 마음에 의욕이 앞서 이 같은 행위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라며 “범죄 전력이 없고, 오랜 기간 헌신적으로 교육자의 길을 걸어온 점 등을 고려해 이같이 선고한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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